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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 워낭소리 by franz (14)

워낭소리

 

영화 ‘워낭소리’의 시작과 끝은 언제일까? 시간이 순차적으로 흘러 40년이나 산 일소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이 영화가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영화의 첫 장면은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는 노부부의 등장이다. 이어서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의 탑에 절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 소에 대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 암전. 소가 살아있던 시점은 여기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즉, 이 영화는 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이끌어간다. 40년 동안 함께한 두 노인네의 기억일 수 있고, 3년 남짓 관찰한 감독의 기억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플래시백은 완성된다.

이 다큐멘터리가 플래시백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사건의 뒤에 깔려있는 이야기일 수 있고, 기억이라는 단어로도 치환 가능한 플래시백은 그 형식상 감독의 의지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부 동력이라는 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불필요한 관계는 과감히 정리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 이 세 주인공만 등장한다. 노인들의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과의 관계는 고려치 않는다. 40년을 일해서 키운 자식들이건만 추석에 마당에서 밥먹고 이야기 조금하는 정도만 나오고 이후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랫집 주민도 등장하지 않는다. 세 주인공 이외에 사람들이 등장할 때는 소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이다.

그러면, 감독은 무엇에 주목하는가? 첫 번째, 나이 혹은 세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얼굴 전체를 돌아나가는 주름살, 몇 개 남지 않은 이빨, 흰머리, 햇빛에 그을려 물기가 날아가버린 앙상한 팔과 다리의 피부, 성치 않은 왼쪽 다리에서 보이는 근육 없는 종아리에 대한 클로즈업이 반복된다.

소의 경우는 어떤가? 나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죽 위로 드러난 갈비뼈와 엉치뼈, 생기없고 탄력없는 털, 나이 먹어 저절로 배어나오는 눈물이 괸 노안, 세월의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워낭에 집중한다. 반면에 영화의 화자로 등장하는 할머니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다음으로 감독이 눈길을 두는 것은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이다. 할머니의 핀잔과 해설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지만, 영화적으로는 할아버지와 소의 교차편집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가끔 영화속에서 내뱉는 노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소가 먹을 풀이기에 농약을 치지말자하고, 먼 마실길에 자고 있는데도 집으로 데려왔다는 자랑을 동네사람에게 하는 한편, 소의 마지막에는 장례를 지낼거라 한다. 소와 할아버지를 한 화면에 놓을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감정이 나타난다. 원경에서 잡은 소달구지는 목가적이기도 하고, 역광을 활용할 때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나이 먹은 소의 뒷다리와 힘없는 노인의 다리를 동시에 잡은 컷에서는 측은함과 경외심이 혼재된다. 생명을 다한 소의 육체를 땅에 묻는 순간, 노부부의 모습에서는 쓸쓸함마저 보인다.

하지만, 감독이 주변을 정리하고 이 세 주인공에만 집중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위험해 보이는 도박일 수 있다. 현실을 갈무리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장르의 특징을 감독은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와 노부부와의 관계로 모든 것을 축소시키는 방법을 통해 감독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이미지로만 집중한다. 이 작업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없다. 영화속에는 4계절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사실 영화 촬영 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현실과 시간의 의도적인 재편집이라는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독은 목가적인 풍경, FTA라는 냉정한 현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순환을 환청과도 같은 워낭소리로 수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지 않는 산새의 소리도, 원경에서 잡은 소의 모습에서도 워낭소리는 또렷이 들린다. 이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한다.


“애초 떠올렸던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집중적으로 재구성했다. 현실을 도려내서 보여주는 액티비즘의 관점에서는 비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식이 심성적으로 끌린다.”-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영화제작의 동기를 개인적인 것이라고 했다. 사회생활에 지친 자신을 위로받으려 했고,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 세대의 노동인 농사일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소의 이미지를 화면에 담으려 했다고 한다. 기억에 매달려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감독은 영화도 환영처럼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플래시백이라는 점은 나름의 타당한 선택일지 모른다.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순간부터 봉화의 산골 마을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감독도 현실의 호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살아온 감독의 아버지가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후 아무런 말없이 쥐어준 30만원을 통해 본 아버지의 마음이 더 깊이 남을 것이다.

Posted by franz

2009년 03월 11일 10시 49분 2009년 03월 11일 10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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