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컴퓨터가 두뇌싸움을 하면 누가 이길까? 체스게임 결과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 두 편이 올해 하반기에 개봉되었다. '다크 나이트'와 '이글 아이'. '다크 나이트'에는 천재 악당 '조커'가 등장하고, '이글 아이'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컴퓨터 '아리아'이다.
우선,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 대해 살펴보자.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의 '탄생 신화'를 이전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에서 만들어 냈지만, 이 영화에서 조커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의 탄생에 대한 몇 가지 단서가 있지만("바람난 어머니에 분노한 아버지가 내 입을 이렇게 찢어놓았지"라는 대사 등등) 영화속 그의 행동을 보면 그런 말도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마치 공기 중에 떠돌던 음험한 기운이 어느 순간 질량을 가진 물질, 즉 인간으로 나타난 것과도 같다.

거기에다, 각종 악행의 타이밍은 기가 막힌다. 첫 번째 등장 시퀀스인 은행강도 부분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가 구축해온 강도들의 네트워크를 스스로 허물면서도 도망가는 시점은 정확하다. 그가 탄 통학버스가 다른 버스들 행렬에 끼워드는 순간은 절묘하다. 1초의 망설임도 없어 보인다. 영화의 중반 이후 배트맨에게 조커와 일당들이 잡혔을 때 감시하던 형사를 제압하여 탈옥한다는 설정은 그냥 받아들이지만 부하의 몸속에 전화기로 작동하는 폭탄을 집어넣는다는 아이디어는 기막히기만 하다. 마치 잡히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모든 것을 준비한 듯 보인다. 이 부분은 배트맨과 '덴트' 검사, '고든' 서장의 계획 자체가 허무해지는 지점이다. 고담시 병원에서는 화장한 우스꽝스런 얼굴로 여자 간호사복을 입고 다녀도 거침없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검사를 경호하는 경찰조차 모르고 있는 듯하다. 조커라는 악신(혹은 운명)의 주사위 놀이에 농락당하는 공권력과 영웅이 그들인 셈이다. 거기에다, 감독이 은근히 조커의 시선으로 영화를 통제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글 아이'의 슈퍼컴퓨터인 '아리아'는 아예 '자신'의 목소리(단어의 합성에 의한 목소리 생성이겠지만)로 인간들을 가지고 논다. 이는 어쩌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할(HAL)과도 같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기기들을 작동해서 인간들의 행동을 제약한다. '제리'를 추적하는 FBI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항구의 기중기를 이용하고, 심지어 '레이첼'의 동선을 파악하여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음을 근처 맥도날드의 TV로 알려준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하여 '제리'를 관찰하면서 그의 근처에 있는 전광판으로 임무를 부여하는 치밀함도 갖고 있다. '레이첼'과 '제리'에게 '폭발물'을 전해주고 달아나는 아랍인을 죽이기 위해 허허벌판의 전선줄을 잘라 감전시켜 죽이는 장면은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때, 거기에서 폭발물을 작동시키기 위해 어린이 악단이 미국 국가를 선곡하게 한 것도 이 컴퓨터이다.(음성 신호는 '하이 F'이다) 아리아는 휴대폰으로 통제하는 거의 모든 기술을 보여주면서 CCTV와 적외선 센서, 음성 감시기능을 이용하여 인간을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서 잠시 영화제목인 '독수리의 눈'으로 돌아가 보자.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를 보면 알렉산더는 평원에서 다리우스와 대회전을 벌이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제우스'의 화신인 '독수리'가 떠 있으며 곧이어 독수리의 눈 시점인 거대한 부감이 펼쳐진다. '필리포스'의 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신의 아들'이기를 열망하는 알렉산더의 욕망이 투영된 장면이다. 한편으로, 미국의 국가 문장은 '흰머리 독수리'이다. 따라서 '이글 아이'는 '신의 시선', 혹은 '국가의 감시'로도 의역할 수 있다. 결국 주인공은 통제된 사회, 국가와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두 악역 간의 우위를 매겨보자.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를 들이댄다면 아리아보다 조커의 손을 들고 싶다. 이를 위해 결말 직전의 한 장면씩을 살피자면, 조커의 실패는 단 한번, 피난선 두 척에 탔던 인질들과의 내기에서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이 시퀀스에서 조커의 승부수, 즉 군중들의 이기심에 호소한 작전은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고 만다. 심리학의 결론에서는 두척 다 폭침하고 말 일이지만 상대방 살인이라는 요소 하나가 개입하여 인간들은 결행하지 않는다.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에게 결정이 부과될 때 자기 손에 피 묻히려 하지 않는 경험이 투과되었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감독의 결정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감독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조커를 배신한다.)
아리아는 기계라는 물질적인 한계 때문에 몰락한다. 자신이 지목한 임시정부의 수반이 될 국방장관은 그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격리되고, 통제가능하리라던 군인의 손에 메모리 박스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연산이 종료되고 기능이 정지당한다. 영화 속에서 정확히 시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호해지는 순간(아마 감독도 마지막에 연출의 힘이 딸렸던 것 같은데) 아리아의 감시를 벗어난 제리가 두발로 의사당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인을 피신시키고자 대통령의 면전에서 총을 쏴 버리면서 '하이 F' 음이 나오는 순간을 저지하고 컴퓨터의 정부전복 음모를 좌절시킨다.
두 영화의 주인공인 악당, 컴퓨터가 실패하는 순간 끼어드는 변수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인간의 심리이다. 조커의 경우,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과신이 이 변수를 넘어서지 못했다. 연산에 의한 상황조작을 확신한 컴퓨터는 심리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인간의 행동 유형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여러번의 실험을 거친 뒤 나타나는 확률의 정리임을 간과했기에 실패했다.
두 개의 실패 이후 각각의 주인공이 한 행동은 영화에서 본 결론대로이다. 조커는 더욱 악랄해졌는데, 덴트 검사와 배트맨의 연인인 레이첼을 죽여서, 덴트를 살인도 서슴치 않는 '투 페이스'로 타락시켰다. 그리고, 배트맨은 우울해져서 스스로 어둠속의 '흑기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글 아이'의 주인공인 컴퓨터는 고철로 변했다.
Posted by franz

